30만원 들고 무작정 상경한 부산 청년
배우 이준기의 성공 스토리는 30만원에서 시작됐다. 부산에서 태어나 창원에서 성장한 그는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사흘 만에 서울로 올라왔다.
연기를 하고 싶었지만 집에서 반대하자 무작정 상경을 결심했고, 이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보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 조달한 30만원이 그의 전 재산이었다.
서울 신촌 인근에서 당구장이나 호프집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오디션을 보러 다녔던 그는 2001년 의류 브랜드 ‘So Basic’의 지면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여러 광고를 찍으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고, 2003년 MBC 드라마 ‘논스톱4’에 단역으로 첫 출연했다.
3000대 1 경쟁률을 뚫은 ‘왕의 남자’ 캐스팅 비화
이준기의 인생을 바꾼 작품은 2005년 영화 ‘왕의 남자’였다. 당시 24살이었던 그는 무려 3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여장 광대 ‘공길’ 역을 따냈다. 오디션은 3차까지 진행됐으며 한 달 동안 치러졌는데, 연기 좀 하고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모두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준기가 오디션에서 선보인 비장의 무기는 의외로 간단했다. 그는 “나만의 뭐가 필요한데 마지막에 동작 하나를 보여줬는데 선배님들이랑 감독님한테 반응이 좋았다”며 물구나무서서 다리를 벌리는 동작을 시연해 보였다.
연기력의 부족한 부분을 텀블링이나 사물놀이 등 신체 연기로 메우기 위해 매일 다치면서도 연습을 멈추지 않았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 천만 관객 돌파의 신화
‘왕의 남자’는 250개 스크린에서 상영을 시작해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천만 영화가 됐다.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었고 스타 캐스팅이 없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크게 성공했으며, 한번 본 영화를 다시 보는 ‘n차 영화 관람 문화’를 만들어내며 한국 영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같은 시기 이준기는 SBS 로맨틱코미디 드라마 ‘마이걸’에서 재벌남 ‘서정우’ 역으로 출연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고수하는 등 브라운관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이를 통해 ‘여자보다 예쁜 남자’로 큰 인기를 얻으며 ‘이준기 신드롬’을 누리게 됐고, 특히 그가 출연한 음료 CF ‘미녀는 석류을 좋아해’는 최단 기간 최대 매출이라는 성과를 이뤘다.
하루아침에 찾아온 ‘연예인 병’의 그림자
갑작스러운 성공의 그림자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무명 배우에서 하루아침에 ‘천만 배우’로 떠오른 이준기는 심각한 연예인 병에 걸렸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그는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착각할 정도로 자신을 과대평가했으며, 매니저 없이는 외출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사람들을 대할 때 거만한 태도를 숨기지 않았고, 심지어 오래된 친구들에게조차 “너를 보기가 역겹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친구들한테도 손절당할 만큼 변해버린 자신을 뒤늦게 깨달은 이준기는 이후 이를 뉘우치며 겸손한 모습으로 변화했다.
‘사극 불패’ 이준기의 새로운 도전
현재 이준기는 새로운 작품 준비에 한창이다. 그가 주인공으로 출연할 예정인 드라마 ‘경복궁 탐정사무소’는 사건 쫓는 임금님과 임금 쫓는 신입사관의 궁 넘고 담 넘는 코믹 수사 활극이다.
이준기는 극중 허세와 독설이 작렬하는 조선의 슈퍼 갑(甲) 태평성대 조선에서 사건을 쫓는 임금님 혜종을 연기한다. 사람 얼굴 앞에서 대놓고 개무시하는 것이 일상이고, 시도 때도 없는 짜증 남발에 남의 가슴 깊이 비수처럼 후벼 파는 독설은 덤인 인물로, 나불대는 폼이 꼭 뻐꾸기 같아 뻐꾸기의 한자말 ‘포곡 선생’이라 불린다.
이는 2023년 tvN ‘아라문의 검’ 이후 방송 기준 3년만의 컴백작이다. 스튜디오N이 제작하고 소민선 작가가 대본을 쓰는 이 작품으로 ‘왕의 남자’를 시작으로 ‘일지매’ ‘아랑 사또전’ ‘조선총잡이’ ‘밤을 걷는 선비’ ‘달의 연인’ 등 사극 흥행의 아이콘인 ‘이준기=사극불패’의 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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