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떠난 ‘월드스타’의 꿈을 좇아, 모든 걸 내려놓고 홀로 바다를 건넜다.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쥔 31살, 김윤진은 국내 정상의 자리에서 미국으로 향했다. ‘쉬리’로 한류 붐의 선봉에 섰고, ‘밀애’로 2002년 청룡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직후에도 안주하지 않았다.

2003년 미국행을 선택했고, 이 결정은 곧 미국 지상파 드라마 ‘로스트(LOST)’의 권선화 ‘선(Sun)’으로 이어졌다.

한국에서의 초기 활동은 치열했다. 1996년 드라마 ‘화려한 휴가’로 데뷔한 뒤 ‘웨딩드레스’ 등으로 얼굴을 알렸고, 1999년 영화 ‘쉬리’로 스크린에 진입해 대중적 인지도를 폭발시켰다.

이어 변영주 감독의 ‘밀애’에서 파격적인 연기로 2002년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으며 연기력을 입증했다.

정상에서의 ‘미국행’은 모험이었다. 2003년 미국 에이전시와 계약 후 본격적으로 문을 두드린 그는 2004년 J.J. 에이브럼스가 합류한 ‘로스트’에서 한국인 캐릭터 ‘선’을 배정받아 주연급으로 활약했다.

‘선’은 애초 대본에 없던 배역이었지만 김윤진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뒷이야기가 회자될 만큼, 그의 존재감은 강렬했다. 그는 미국배우조합상(SAG) TV드라마 앙상블상, 아시안 엑셀런스 어워즈 TV부문 최우수 아시아 여자배우상 등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원조 한류 월드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에서의 성공에도 한국을 놓지 않았다. ‘로스트’ 촬영 중에도 ‘세븐 데이즈’(2007), ‘하모니’(2010) 등 한국 영화에 꾸준히 출연했고, 2011년 ‘심장이 뛴다’로도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미국 진출의 기반은 한국에서의 활동이었다. 나는 한국 배우”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후 ‘국제시장’(2014), ‘시간위의 집’(2017) 등에서 스펙트럼을 넓혔고, 미국·한국을 오가며 필모그래피를 확장했다.

최근 근황으로는 배우에서 제작자로의 확장을 본격화했다. 2024년 영화 ‘도그데이즈’에서 주연과 공동 제작을 동시에 맡아 새로운 면모를 보였고, 최근 인터뷰에서 “20년 전과 달리 한국 배우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훨씬 수월하게 활동하는 환경이 됐다”며 달라진 산업 생태계를 체감했다고 밝혔다.
‘월드스타’라는 수식어에 대해선 “이젠 명함 내밀기 쑥스러운 상황”이라면서도, 한국 배우로서의 자부심과 다음 도전에 대한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1990년대 말 ‘쉬리’의 신드롬, 2000년대 초 청룡 여우주연상의 영예, 그리고 30대 초반 모든 걸 걸고 떠난 ‘로스트’의 대성공. 김윤진은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경로를 개척한 1세대 배우이자, 여전히 변주를 멈추지 않는 현역 창작자다.

“한국에서 사랑받았기에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그의 말처럼, 출발점은 한국이었고, 무대는 세계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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