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가 1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대한민국은 지금 그야말로 ‘단종과 엄흥도’ 열풍입니다.
영화관에서 펑펑 울고 나온 관객들의 질문은 하나로 모이고 있죠. “그래서, 단종의 시신을 거둔 엄흥도는 그 뒤에 어떻게 됐을까?”
영화는 엄흥도가 시신을 수습하는 눈물겨운 장면에서 끝을 맺지만, 현실에서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묘연했던 그의 행적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대구시 군위군에서 본격적으로 불붙고 있다는 소식, 발 빠르게 정리해 드립니다!
🎬 영화는 끝났지만, 현실판 ‘태조 엄흥도’는 진행 중!
영화 속에서 단종을 향한 일편단심 충성심을 보여준 엄흥도. 하지만 역사 속에서 그는 시신 수습 직후 가족들과 함께 종적을 감췄는데요. 그동안 설로만 전해지던 그의 ‘엔딩’ 이후 행적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대구시 군위군 산성면에서는 조금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바로 영월엄씨 문중 후손들이 모여 “이곳이 진짜 엄흥도 공의 묘역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죠.
📜 “우리 할아버지는 여기 계십니다” – 증거가 쏟아진다
단순한 문중의 주장일까요? 아닙니다. 이번 ‘진묘 성역화’ 제안에는 꽤 묵직한 근거들이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20대 종손인 엄근수씨는 “충의공(엄흥도)께서 둘째 아들과 함께 군위로 피신해 대대로 묘소를 수호해 왔다”며, 선조들이 “먹을 건 못 챙겨도 족보는 꼭 챙기라”고 당부했던 눈물겨운 사연을 전했습니다.
사실 2009년 김광순 경북대 명예교수는 논문을 통해 군위군 산성면이 엄흥도의 묘소임을 고찰한 바 있습니다.
1733년 병조 발행 문서와 1748년판 족보 등에는 놀라운 사실이 적혀 있습니다. 바로 영조가”엄흥도의 충의를 기려 후손들의 군역과 잡역을 면제하라”고 내린 완문(完文)입니다.
군위군 역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김진열 군위군수는 “역사적 인물이 우리 지역에 잠들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이곳을 역사의 현장으로 성역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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